56. 과거, 어느 포장마차 - 밤 한 잔 시원하게 꺾는 수지. 제법 마셔본 느낌이다. 단골인 듯 오뎅 안주 가져다주며 단속 뜨면 얼른 튀라는 아줌마. 아까 따지러 갔을 때의 기세는 온대간데 없고 수지의 눈치만 보는 나미. 어렵게 말을 꺼낸다. 나미 (버벅) 너네 새 엄마가 전라도 사람이라고 나까지 싫어하는 건 부조리한 일이야... (오뎅 하나 집으며) 그건 지역감정을 조장해서 민주주의 정신.... 수지 (술잔 ‘딱’ 내려놓으며) 야! 나미 ....(오뎅 내려놓는다).... 나미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는 수지. 말똥말똥 쳐다만 보는 나미. 수지 (짜증) 너 술도 못 마시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잔 들이키는 나미. 써서 죽는 다는 표정이 귀엽다. 나미가 잔을 내려놓으면 어느덧 세병이 비워진 상태로 장면전환. 멀쩡하게 보이려 애 쓰지만 눈이 풀린 수지, 연신 젓가락을 떨어뜨린다. 한편 자작까지 하며 좀 수다스러운 나미. 사투리가 걸쭉하다. 나미 나도 힘들어. 솔직히 우리 오빠, 민주투사. 언제 잡혀 들어갈지 몰라. 울 할무니, 나보고 언니래. 응? 근데 내가 왜 그래도 춤을 추냐? (상을 탁탁 치며) ‘우리’가 중요하다는 거지. 솔직히 우리가. 왜 우리가 중요하냐? 야. 수지. 정 수지. 들어? 듣고는 계시나요? (계속 얘기하라는 수지의 손짓) 후~. 아줌마. 꼬막은 없죠? 꼬막? 지금 꼬막 철인데. 수지 (혀 살짝 꼬인) 그래도 난 너 싫어. 나미 (후~) 그래도 난 너 좋아. 수지 .....왜? 나미 ...너 예쁘잖아. 수지 ..... 나미 너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충격 받았다. 나 전에 학교에서 제일 예뻤거든? 근데. 서울 오니까....(울먹) 다 예쁜거야. 애들이. 근데! 너는 걔들 중에서도...(울먹울먹) 너무 예뻐서.... 마침내 이유 없는 울음을 터뜨리는 나미. 매우 취했다. 빤히 바라보던 수지. 영아들이 또래가 울면 따라 울 듯 울기 시작한다. 마침내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어이없는 상황. 아줌마도 손님들도 비웃는다. 나미 (통곡)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수지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미 아니야. 내가 미안해. 용서해줘. 널 위해서.... (통곡) 서울사람 될께! 휘청거리며 우정을 맹세하는 두 명의 만취한 고삐리들. 바보 같은 놈 하나는 괜히 따라 울고 있다. 기둥에 걸린 라디오.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음악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