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예술가들은 연습이라는 기나긴 과정을 통해서 하나로 어울려야 하는 것이다. 이 어울림의 과정은 뚜렷한 자신의 전문 영역과 개성을 살리려 애쓰는 동시에 연극이 지향하는 바, 하나의 미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서히 자신의 것을 죽여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나를 살리면서도 헌신하여 연극이라는 예술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습 과정이란 새로운 제3의 예술, 즉 연극을 만들기 위해 창조하며 죽어 가는 희생의 어울림인 것이다.
그러나 이 어울림의 과정은 분명 지루할 정도로 길고 복잡하며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리고 모든 어려움은 반드시 연습해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연극은 연습의 예술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공연은 절대로 연습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의 현장'이다.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드디어 우리가 지향했던 연극이 만들어지는 시간이 된다. 창조의 순간이다. 새로운 감동의 예술, 조화롭고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지면서 극장은 새로운 참여자인 관객과 하나로 어우러진다. 그런데 실은 이 때야말로 만나는 모든 개체가 다 소멸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창조의 순간이 곧 소멸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정한 어울림의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연극은 사라지는 한 순간을 위해 기나긴 시간동안 희생하며 어울리는 성스러운 행위다.
이 숭고한 일이 바로 '어울림'의 의미이며 연극 창조의 정신이다.
안민수의 체험연극론 <연극적 상상 창조적 망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