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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장미

등록일2016-03-09

조회수7,450

제목

연극의 3요소 ♡

 
1. 희곡
연기(演技)를 위하여 쓰인 작품. 
희곡이라는 말을 흔히 각본(脚本)이라는 말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며, 또 양자를 하나의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나 엄밀하게는 희곡과 각본이 구별되어야 한다. 연극과 관계가 있는 점에서는 희곡이나 각본이 마찬가지이나, 연극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어서, 각본과 관계되는 것은 연기자가 주체가 되는 미모스(mimos)라는 연극으로서 그 연기자를 위해 작가가 만드는 콤퍼지션이 각본이다. 이에 대해 희곡은 드라마로 호칭되는 연극과 관계된다. 드라마는 배우가 창조하는 예술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독자적으로 이것을 창조할 수 없고 극작가라는 문학가와 협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드라마는 어떤 문학작품을 예상하는 연극이고 그 문학작품이 곧 희곡이다. 그래서 희곡을 흔히 드라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2. 배우
희곡에 나오는 인물의 역을 맡아 무대에서 표정 몸짓 등의 동작과 대사로 극적 행위를 해 보이는 사람. 
기원은 BC 6~BC 5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비롯되었다. 당시는 히포크리테스(hypokrites)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대답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디오니소스신(神)을 모시는 원무합창(圓舞合唱)에서 중앙의 지휘자가 합창단의 물음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신(神)의 수난기(受難記)를 노래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으며 이것이 배우의 시초이다. 배우는 원래 직업인 또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생활 및 생산에 결부된 제례(祭禮) 주술(呪術) 등을 관장하는 역할이었으며 신령과 동화(同化)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변신(變身), 모방동작(模倣動作), 신지핀 것 같은 기도무용(祈禱舞踊) 등을 장기로 삼은 사람들이었다. 그 후 그리스 말기부터 로마에서 번성하던 극단은 중세에 이르러 그리스도교 지배로부터 탄압을 받아 르네상스시대까지 여배우가 허용되지 않음은 물론, 남배우의 역할도 남성인 선교사나 일반 신자 등 아마추어에게 맡겨졌다. 
참다운 의미의 직업적 전문배우가 확립된 것은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의 코메디아 델 라르테로 알려진 즉흥희극 상연 무렵부터라 할 수 있다. 16세기가 되어서도 엘리자베스조(朝)의 셰익스피어극에서는 여전히 여배우를 쓰지 않았는데, 이 무렵 유럽에서는 남자역을 남우, 여자역은 여우라 하였으며 이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사(神事)와 깊이 결부되었던 고대와 중세 그리스도교시대는 별도로 치고, 배우라는 직업이 노예적 지위였거나 혹은 유랑(流浪)의 예인(藝人)이었으므로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차이가 없으며 이것이 예술가로서 인정받게 된 것은 19세기 말 이후의 일이다.
한국에서도 배우는 천인(賤人) 출신으로 옛날에는 창우(倡優) 희명(戱名) 광대(廣大) 등으로 불렸으며, 이들을 통틀어 광대라고도 하였다. 인형극의 괴뢰(傀儡)라는 글자로 광대 괴(傀), 광대 뢰(儡)라 하였고, 가면무용자 가면극배우 꼭두각시 창부(倡夫) 등을 모두 광대라 하였다. 배우라는 이름이 굳어진 것은 한말 원각사가 창설되면서부터이다

3. 관객
흥행물을 구경하는 사람.  
연극에서는 희곡 배우 극장과 함께 연극 성립에 불가결한 요소이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 창조에 적극 협력하여 연극을 만들어내는 창조자이며 동시에 감상자이다. 구경꾼이라고도 하지만 이것은 호기심을 만족시키려는 방관자까지 포함한 넓은 뜻에서의 관객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관객도 포함되지만 본질적으로는 연극의 순수한 관객과 구별된다. 무대에서 전개되는 세계와 관객의 내적 세계가 공통의 자리를 가지고, 무대와 관객 사이에 심적 교류가 이루어질 때 연극은 성립된다. 그러므로 무대가 관객의 기대에 어긋날 경우, 관객이 소동을 일으켜 상연을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영화나 텔레비전의 관객 시청자처럼 이미 완성된 작품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감상자와 연극의 관객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극이 국가적 행사로 상연되어 일반 시민이 관객으로 참가하였지만, 근대극 이전의 유럽 연극은 주로 궁정극장에서 상연되고 관객의 자리는 상류계급이 독점하였다. 또 퓨리턴(Puritan:청교도) 정신의 지배하에 있던 영국에서는 극장이 부도덕한 장소로 지목되는 등 시대와 나라에 따라 제각기 도덕적 사상적 정치적 조건들의 제약을 받고, 일반 서민 누구나가 인간 본래의 즐거움인 연극을 자유롭게 즐긴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자본주의의 진전에 따라 사회의 분화가 진전되고 관객의 질도 다양화되었다. 따라서 동일한 작품에 대하여 관객이 상반되는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1830년 V.위고의 《에르나니》가 야기시킨 프랑스 고전파와 낭만파 사이의 에르나니사건이나 J.싱의 《평판 좋은 사나이》(1907)가 더블린이나 미국 각지에서 받은 상연 방해 등이 그 예이다.
 
 
                                                                                              [연극의3요소 _ 보이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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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모

|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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